2000년대 KBS 예능 ‘개그콘서트’에서 활동한 개그맨 김영삼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개그콘서트 코너 ‘공부합시다’와 ‘짠짠극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최근에는 그가 현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해 화제가 됐습니다. 물론, 개그맨이라는 직업도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김영삼의 현재 직업과 그의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름 덕에 학생회장 당선
통장은 항상 예명으로

전라북도 전주 출신인 김영삼은 “당시 정서상 전라도에서 김영삼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었다”라며 이름에 얽힌 ‘웃픈’ 사연을 전했습니다. 그는 3남매 중 막내로 형(첫째)과 누나(둘째)가 있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형이 태어났을 땐 작명소에서 쌀 2가마니 값을 주고 산 이름을, 누나에게는 작명 책으로 공부한 이름을 직접 지어줬습니다. 반면, 셋째에게는 단순히 돌림자 ‘영’ 자와 3번째라는 의미로 ‘삼(三)’자를 이어붙여 김영삼이라는 이름을 주셨죠.

김영삼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이름이 싫었다고 합니다. 바로 1993년 당선된 고 김영삼 대통령과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름 때문에 덕을 본 적도 많았는데요. 학창 시절 이름만으로 이미 화제의 인물이 되었고 그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인기에 힘입어 모교 전주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5명의 후보 중 1차 투표 때 과반으로 당선된 것이죠. 마침 그가 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름 덕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손해를 본 적이 더 많다고 생각해 이름을 창피하게 여겼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계좌 실명제’ 전에는 통장도 예명으로 만들고 의료보험 카드 역시 친구의 것을 빌렸다고 하죠. 또, 그는 과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전했습니다. 현재는 김영삼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좋다고 밝힌 바 있죠.

치과 존재도 몰랐던 학생,
치대 입학한 사연은…

김영삼의 부모님은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대학교나 전북대학교, 2곳을 꼽으며 진학을 권유했습니다. 그가 대입을 준비하던 때는 수능이 처음 생기던 해였는데요. 서울대학교는 수능 외에도 ‘대학별 고사(본고사)’를 치러야 했죠. 김영삼은 이에 전북대에 가기로 마음먹고 가장 성적이 높은 과를 찾다가 치과대학을 알게 됩니다.

당시 김영삼은 슈퍼에 가려고 해도 몇 시간을 걸어서 나가야 하는 시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치대 원서를 넣을 때를 회상하며 치과에 가본 적도, 치과라는 존재조차도 몰랐다고 밝혔죠. 치대를 지원한 이유는 함께 대학 상담을 받던 친구 때문인데요. 전북대 치대를 목표로 했던 친구는 성적이 부족해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김영삼은 ‘그럼 내가 써볼까?’라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죠.

바퀴벌레 단칸방에서
치과의사 개그맨 탄생

27살, 그가 예방치과 수련의 시절 개그맨 공모 포스터에서 우연히 자신의 나이가 공채 제한 연령 턱걸이인 것을 알게 됩니다. 평소에도 사람을 웃기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던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는데요. 정말 ‘덜컥’ 합격해 2001년 KBS 공채 개그맨 16기로 데뷔하게 됐죠. 그의 가족들은 개인사에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개그맨 데뷔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에 따르면 가족의 대화 주제는 ‘세계 평화’나 인권문제 등이라고 하죠.

서울로 올라온 그는 동료 개그맨 김시덕, 정명훈과 셋이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했는데요.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서 천장에서 떨어질 정도였다고 밝혔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도 쉽지 않았죠. 주변에서는 ‘너 재미없다’, ‘차라리 치과의사 타이틀을 단 개그맨을 하자’라고 말했는데요. 김영삼은 이를 조언으로 받아들여 치과를 개원해 원장을 하면서 개그맨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2003년 개콘 코너 ‘공부합시다’의 ‘김 박사’와 ‘짠짠극장’ 등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습니다.

본업 개그맨 휴식기
‘3년 방황’ 진짜 이유는

2004년 짠짠극장으로 한창 잘나가던 김영삼은 돌연 개그맨 휴식기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김영삼을 두고 부업이라던 치과 홍보 목적으로 개그맨이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죠. 그는 개그맨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잠시 물러나야 할 때”라고 전했었죠. 시기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개그콘서트 코너도 개편이 이뤄지는 상황이었는데요. 이후 그는 방송 활동보다는 치과 의사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의 근황 인터뷰가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휴식기의 내면에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그가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2003년, 척추 문제로 했던 수술에 후유증이 온 것인데요. 그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동시에 왔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정신과 약까지 먹으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던 것이죠.

‘사랑니 계 유재석’
1년 중 122일 강의

김영삼은 방송을 쉬면서 부업이었던 치과 의사 업무에 최선을 다했는데요. 현재 그는 강남 내 위치한 치과에서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사랑니 치료와 관련해서는 국내 ‘사랑니를 가장 오랫동안, 많이 뽑아 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밝혔죠. 김영삼에 따르면 진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랑니 치료는 타 치과의사들에게 비인기 진료입니다. 그는 틈새시장을 노려 사랑니 발치 등 10년 동안 사랑니 치료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2001년 개원했던 치과를 세계적인 치과로 키우겠다는 의지로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2005년에는 캐나다 토론토 치과대학 임플란트 CE 코스를 밟았으며 2007년에는 약 1년 동안 미국 UCLA 치과대학에서 임상지도의로도 활동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도 공동개원 중이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치료에 매진했었죠. 또, 친구들이 결혼식 사회를 부탁할 때도 비행기 표만 1000만 원 이상 들었다고 하죠.

김영삼은 2019년 한 해 동안 122일을 강의하는 등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7개국 24개 도시를 다니면서 강의를 했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던 시간만 총 700시간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죠. 그는 자신을 ‘사랑니 계의 유재석’이라고 평가해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또, 본업이던 개그맨 활동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의료계에서처럼 개그맨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