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를 졸업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이 배우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존재였습니다. 10년 동안 노력한 연기 생활이 대학 이름이 가려지는 것 같아 공식 프로필에는 일부러 학력을 지우기도 했죠. 누구보다 연기에 ‘진심’인 그녀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8년 무명생활

최희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품은 연기자의 꿈을 위해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공이었던 신문방송학, 영어영문학보다 연기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교 3학 시절 UC 버클리로 교환 학생을 떠나 공연예술학과를 부전공으로 수료하였죠. 이후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찍은 다큐멘터리가 KBS 영상 공모전에 뽑히며 방송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이후 영화 <킹콩을 들다>의 서여순 역할을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최희서는 드라마, 영화, 연극 무대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였는데요. 특히 일일극 <오늘만 같아라>에서는 필리핀 새댁 크리스티나 역을 맡아 필리핀식 영어와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연기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8년이라는 긴 무명의 시간을 보냈는데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대관료를 모으고 포스터를 찍어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거지가 돼도 배우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지하철에서 캐스팅된
일본인 역할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하고 배우의 길을 걸은 그녀를 알아본 것은 영화 <동주>의 제작자 신연식 감독이었습니다. 무명 배우 9년 차로 접어들 때 즈음 지하철에서 연극 대본 연습에 몰두해 있던 그녀를 신 감독이 발견하여 명함을 건넨 것이죠. 신 감독이 ‘저 여자가 만약 같은 역에서 내리면 명함을 건네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공교롭게 둘 다 경복궁역에서 내렸고, 일주일 뒤 그녀는 ‘쿠미’ 역할을 제안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일본과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쿠미’ 역할을 위해 일본어로 된 윤동주 평전을 읽고,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흑백영화를 보며 노력하였습니다. 대사가 많지는 않았지만 윤동주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캐릭터 연기를 위해 일본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하였죠.

<동주>를 통해 신인 배우로서 얼굴을 알린 그녀는 이전에 80여 번의 오디션을 보는 동안 ‘왜 좋은 학교 나와서 연기하냐’는 학벌에 관련한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밝혔는데요.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에게 붙은 ‘엄친딸’, ‘뇌섹녀’ 등의 수식어가 진절머리가 나 공식 프로필에서 학력을 삭제한 이유를 설명했죠.

데뷔 8년 만에 만난 ‘인생작’

그녀는 2년 후 이준익 감독과 다시 만나 ‘인생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인 독립유공자 ‘가네코 후미코’ 역할을 통해 그 해 11번의 신인상을 받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죠. 뛰어난 일본어와 어눌한 한국어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수년간 독립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쌓은 연기력이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박열>을 통해 2017년 대종상 역사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청룡영화제를 비롯한 8개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습니다. 더하여 이 영화를 통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최희서는 영화 상영 기간 중 있던 가네코 히무코의 추도식에 참석하여 헌시를 낭독하였죠.

그녀는 <박열>의 성공 이후 2018년 드라마 <미스트리스>, <빅 포레스트>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듬해 영화 <아워 바디>에서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하여 여태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연기했는데요. 30대를 시작하는 자기 자신에게 있어 <박열>과는 또 다른 의미의 대표작이라고 밝히며 작품에 애정을 보였습니다.

최희서는 2020년을 대표하는 히트작 <비밀의 숲2>에는 배우 이준혁이 연기한 서동재의 아내 이유안 역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서동재 실종 사건의 용의자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무고함이 증명된 캐릭터를 연기하며 안방극장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6년 열애 끝에 결혼 골인

스무 살 때부터 11년간 4명의 남자친구만 만나며 오랜 연애를 이어오던 그녀는 작년 깜짝 결혼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6년 동안 교제한 동갑내기 대학교 동기와 백년가약을 맺었는데요. 그는 최희서가 소속사도 없던 시절 함께 기차를 타고 지방 촬영을 가주던 연인이자 그녀가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사람이었죠. <박열> 이후 주어진 많은 기회에 같이 기뻐해 주며 그녀를 옆에서 지켜오던 그와 평생을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결혼식 사진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요. 할리우드를 방불케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결혼식에는 그녀의 가족, 친구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습니다. 그녀는 ‘꽃과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린 무지하게 재밌게 놀았다!’라는 글과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공유했죠.

올해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서영주 역으로 짧은 시간에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연기 변신에 성공하였습니다. 긴 인내의 시간 끝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 연기파 배우 최희서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