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비즈한국

미국에서 유명한 성인 잡지라고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죠. 바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고급 성인지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보이’입니다. ‘플레이보이’의 인기는 1953년의 창간호만 무려 750만 부가 팔려나가는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인데요. 이곳에서 최초의 한국인 모델이었던 분의 근황이 알려져 다시금 화제입니다. 90년대 최고의 섹시 스타 반열에 올랐던 그녀는 누구일까요?

출처 – playboy / instagram @crystalhefner

‘플레이보이’는 1953에 창간된 성인 잡지입니다. 최초의 성인 잡지도, 수위가 극한으로 높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는 매우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아주 높은 인지도를 쌓아왔죠. 그렇기 때문에 잡지에 실리는 것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슈를 일으킬 수 있는 인지도의 잡지였기 때문에 스타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고 했습니다.

출처 – LINGERIE / YOLK

그런 ‘플레이보이’에서 한국인 최초 모델에 등극한 여성이 있었는데요. 그녀는 바로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이승희입니다. 그녀는 친구들과 간 클럽에서 잡지의 사진작가를 만난 후 누드모델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졌는데요. 이를 통해 1996년 ‘플레이보이’의 자매지인 ‘란제리’의 표지를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그녀의 잡지 데뷔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몰았습니다. 해당 잡지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그녀는 국내 속옷 광고 모델에 발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집과 자서전을 발간하는 데에 이릅니다. 사진집 출간 기념으로 진행한 사인회에서는 팬들의 줄이 300m나 늘어져 있었다고 하죠.

출처 – 비즈한국 / pinterest

또한 그녀의 배꼽 아래에 있는 작은 나비 모양 문신 역시 신드롬이었습니다. 이는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자 ‘노랑나비’라는 별명을 얻게 해주었는데요. 이와 같은 나비 문양의 타투 스티커가 유행으로 번질 정도였죠.

출처 – 비즈한국

당시 막 인터넷이 보급되고 미국에 대한 환상이 컸기 때문에 이승희는 더욱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죠. 1997년 3월 말에는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건수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보아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를 더욱 끌어올려 준 것이 그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출처 – ‘내겐 너무도 아찔한 그녀’ / ‘로스트’

그녀의 활동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김혜수가 진행하던 ‘플러스 유’에서 입담을 뽐내기도 했고 1999년에는 ‘물 위의 하룻밤’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지만 이후 그녀가 미국 영화계에서 필모그래피를 쌓는 계기가 되었죠. ‘너스 베티’를 시작으로 ‘내겐 너무도 아찔한 그녀’, ‘로스트’ 등에 조연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습니다.

출처 –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2007년의 한 미국의 월간지에서는 ‘온라인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00명 중 17위에 랭크된 이력도 있습니다. 잡지 모델로 데뷔한지 거의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식지 않은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죠. 이승희의 소식이 끊긴지는 꽤 되었지만 그녀의 소식을 한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출처 – Sung Hi Lee Fansite

2011년까지 존재했던 그녀의 팬사이트를 ‘1살짜리 아이 양육으로 인해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라며 폐쇄한 것이 알려진 것입니다. 그녀는 현지에서 미국인과 2007년에 결혼하였고, 대학 시절 스포츠의학을 전공했던 것을 바탕으로 퍼스널 트레이너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pinsterest / 헬스코리아

이승희는 가정을 꾸린 이후 현재 별다른 연예 활동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앙케트에서 언급되는 모델인 만큼 그녀의 선풍적이었던 인기를 알거나 그녀의 팬이었다면 아쉬울 것이 당연하겠죠. 하지만 세간에 ‘신드롬’을 몰고 왔던 그녀이기에 자신만의 철학과 매력으로 새로운 직업에서 또다시 활약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