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은 언제나 건재한 것 같습니다. <쇼미더머니>와 같은 힙합 프로그램이 늘 화제가 되는 것이 이를 증명하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힙합 프로그램 속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에도 관심을 쏟기 마련인데요. 세 보이는 무대의 모습과 다르게 짠내나는 과거와 미담까지 보유했던 래퍼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생활고로 각종 알바를 경험했다던 대한민국 톱 래퍼를 같이 보실까요?

술만 마시던
철부지 막내

래퍼 넉살의 본명은 이준영이며 1987년 3월 24일 누나만 셋인 사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누나들이 워낙 음악을 좋아해 그의 집엔 많은 테이프가 있었는데요. 그중 1999대한민국,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넉살은 힙합 음악을 접하게 됐습니다. 중학생이 됐을 땐 래퍼 주석의 ‘Lastman Standing’을 듣고 ‘와 이런 게 힙합 음악이구나’라며 깨닫게 되죠. 이어서 그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보게 된 미국 래퍼 커먼의 음악 해석 잡지를 읽게 되며 커먼을 롤 모델로 삼고, 본격적으로 가사를 쓰고 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랩을 좋아했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던 넉살은 서울예대 문예 창작과를 3번씩이나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탈락되어 입학의 문을 넘을 수 없었는데요. 그 뒤로 넉살은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남들은 대학생활을 할 때 그는 각종 알바를 했고, 친구들과 술만 마시며 지냈습니다. 마감시간에 남은 빵을 포장해갈 수 있다는 이유로 빵집에서 최장기 알바를 했고, 일식집에서도 알바를 했죠. 취직을 못하니 돈이 없어서 <대왕세종>의 포졸 알바까지 했습니다. 그 시절 넉살은 최소 9,000원 수입으로도 지내봤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넉살은 본격적으로 힙합을 했는데요. 고등학교 동창 래퍼 ‘쿠마’의 소개로 래퍼 ‘애니마토’를 만났고, 함께 퓨처헤븐이라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죠. 랩네임이 우스꽝스러워도 실력으로 이름을 돋보이게 하는 래퍼 ‘개코’처럼 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넉살’이라는 랩네임도 짓게 됐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수색 대대
미담 제조기

서글서글해 보이는 넉살은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먹고 있던 순댓국에 머리를 빠트리거나, 친구들을 남대하듯 하죠. 극심한 주사로 그는 크게 엎어지는 사고까지 겪어서 입술과 얼굴을 꿰매기도 했는데요. 래퍼로서 딱히 성공하지도 못하고, 최악의 주사가 이어지자 넉살은 ‘군대에서 조용히 지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군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넉살이 입대한 강원도 최전방 수색 대대 ‘칠성부대’는 유일하게  DMZ 비무장 지대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수색, 정발, 배복, 지뢰 탐지 등 1선 주임무를 맡은 곳이죠. 위험하고 치열한 이곳에서 넉살은 ‘참선임’, ‘모범 선임’ 역할을 도맡아 했습니다. 넉살이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을 땐 그의 군대 미담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그와 함께 군 생활을 함께한 사람들은 다음처럼 증언했습니다. “인성만큼은 좋았다. 선임들이 랩해보라고 하면 더 신나서 하는 사람이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견디며 선후임들과 관계도 좋았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다 겪었지만 작은 체구로 묵묵히 군 생활을 소화해서 존경스러웠다.”, “내가 이등병 때 넉살은 상병이었는데, 후임들에게 쉬라고 하고 혼자서 일을 다했다.”와 같은 미담이 쏟아졌죠. 모두 그가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만년 알바생
→ 올해의 힙합 앨범상

군대 전역 후 퓨처헤븐은 해체되고, 계속 취직하지 못했던 넉살은 다시 술을 자주 마시게 됐습니다. 오죽하면 친어머니가 멱살을 잡으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라고 말씀하기도 했죠. 하지만 넉살은 롤링홀과 같은 홍대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묵묵히 솔로 활동을 했는데요. 2013년에 그는 쇼미더머니2까지 나갔으나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까지 마셨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넉살은 힙합 레이블 비스메이저의 수장 딥플로우 눈에 들게 됩니다. 딥플로우는 롤링홀에서 혼자 랩을 하던 넉살을 보고 ‘저 친구와 함께 하고 싶다’라고 느끼며 레이블 입단을 권유했죠. 비스메이저 기존 크루들은 생소한 존재였던 넉살의 입단을 반대했으나, 딥플로우는 이를 무시하고 끝내 넉살 영입에 성공합니다. 둥지가 생겨 일이 잘 풀리나 싶었으나, 넉살은 쉽게 유명해지지 못했기에 다시 생활고를 겪었는데요. 작은 공연들을 하며 플스방 알바를 병행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활동 연수는 길지만 빵 뜨지 않아 넉살은 ‘중고 신인’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던 중 딥플로우의 명곡 ‘작두’를 피처링하면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죠. 하이톤의 목소리에 엄청난 발성, 정확하게 귀를 파고드는 딜리버리를 쏟아내는 랩 스타일로 그는 리스너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매우 쩌렁쩌렁한 톤과 성량으로 라이브 무대를 장악하면서 ‘음원보다 라이브가 좋은 래퍼’라는 평가를 들었죠.

점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넉살은 정규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1년 8개월 동안 작업해서 탄생한 앨범 <작은 것들의 신>은 넉살의 무명시절, 알바 생활을 다룬 명곡들로 구성되어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대상급인 ‘올해의 힙합 앨범상’을 수상하게 됐는데요. “나와 같은 알바생, 비정규직을 대변하고 싶었다. ‘왜 늘 잘 되는 사람만 잘 될까?’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신이 있을까?”라는 의미를 가사에 대입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이 앨범은 아직도 힙합 명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쇼미더머니 6 준우승
한 달 수입 1억

2017년 넉살은 쇼미더머니6에 재도전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중고 신인’답게 많은 참가자들이 그의 무대를 기대했고, 그는 정확한 딕션과 실력으로 기대에 부흥했죠. 프로듀서로 다이나믹듀오를 만난 넉살은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의 무대까지 소화해내며 해당 프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비록 우승자에겐 득점 5만 원 차이로 아깝게 졌지만 넉살은 맥주, 자동차, 영양제, 면세점 등 각종 광고 촬영을 하며 승승장구했죠. 수입 9,000원이었던 무명 래퍼 넉살은 한 달 수입이 1억 인 톱 래퍼가 됐습니다.

군 생활 미담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인지, 넉살은 자신의 랩 네임답게 늘 넉살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장발머리를 하고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에 ‘넉 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동그란 눈과 오뚝한 코 때문에 ‘송지효, 이은형 닮은 꼴’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중들은 장난으로 ‘대한민국 여성 탑 래퍼는 윤미래와 넉살’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죠. 이런 여성화 반응에도 넉살은 즐겁고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넉살은 고공행진 중입니다. 예능 <온앤오프>와 <놀라운 토요일>에서 랩을 할 때의 센 모습과는 다르게 허당미를 보이며 반전 매력을 뽐내고 있죠. 한때 쇼미더머니 참가자였던 그는 이제 쇼미더머니777의 프로듀서가 됐고, 고등래퍼 진행자까지 하고 있는데요. 탁월한 입담과 진행 실력으로 ‘한국 힙합계의 유재석’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습니다. “나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사명감을 밝힌 넉살이 앞으로도 ‘넉살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