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떼고 막막했지만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아요”

 

한때 대한민국을 평정했던 올림픽 영웅들을 기억하시나요? 참 많은 선수들이 있을 테지만 ‘최애’와 같이 유독 근황이 궁금한 선수들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유난히 국민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던 올림픽 선수들이 의외의 근황을 전했는데요. 과연 그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올라운드 스케이터
→ 가방 디자이너

대한민국 前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박승희는 대한민국 쇼트트랙 최초 올라운드 스케이터입니다. 타고난 단거리 재능과 후천적인 장거리 훈련으로 모든 종목이 메달권이었죠. 이런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올림픽 쇼트트랙 전 종목 메달 획득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6살 때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승희가 금메달에 매진했던 이유는 ‘빠른 은퇴’를 위해서였다는데요. 은퇴 후 자신이 어릴 때부터 되고 싶었던 디자이너를 빨리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박승희는 주변의 권유로 운동을 했고 재능까지 있어서 계속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원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수 생활 틈틈이 디자인 공부를 했죠. 이후 그녀는 평창올림픽을 마치자마자 은퇴를 발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가방 브랜드 ‘멜로페’를 론칭했습니다. 비록 매출이 높진 않지만 박승희는 “어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재밌게 하고 있다. 고객으로부터 제품에 대한 반응을 들을 때가 가장 흥미롭다.”며 현재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패션 직종 전환은 박승희에게 사랑까지 가져다줬습니다. 그녀는 패션 업계에서 만난 5살 연상 사업가 남성과 열애 사실을 밝혔죠.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예비 신랑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던 계기로 둘은 사랑이 싹튼 것인데요. 박승희는 “긍정적이고 작은일에 감사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며 상대방을 향한 애정을 뽐냈습니다. 박승희와 그녀의 연인은 열애를 지나 4월 결혼 예정입니다.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 어린이 수영장 운영

천식 치료에 좋다는 이유로 어릴 적에 수영을 시작했던 박태환은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로 불리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 수영 역사상 최초로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보여줬죠. 하지만 그는 도핑 검사에서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 사실이 적발되며 국가대표 지위를 상실 당하면서 수영 생활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박태환은 외부 투자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어린이 수영장을 개장했습니다. 그는 원장을 겸하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운영하고 있는데요. 박태환은 수영장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게 만들고 제2, 제3의 박태환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또한 그는 박태환수영과학진흥원을 이끌며 체육 꿈나무 장학금 지원, 소외계층 및 사회적 약자 지원,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꾸준한 사회 활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3관왕
→ 단국대 코치

토리노 동계올림픽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며 여자 쇼트트랙 사상 처음 올림픽 3관왕을 해낸 진선유 선수를 기억하시나요? 그녀는 2007 세계선수권에서 종합우승까지 하며 세계선수권 3연패까지 기록한 인재였는데요. 하지만 큰 부상 회복에 실패하여 만 22살에 은퇴를 발표하면서 ‘비운의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죠.

비록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진선유의 쇼트트랙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모교인 단국대학교에서 쇼트트랙 코치 제안을 받아 후진 양성에 열심히 힘쓰고 있죠. 더불어 내공이 쌓인 옹골찬 목소리로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과 평창 동계올림픽의 해설까지 해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혹자는 그녀의 은퇴를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진선유은 “원래 운동을 짧고 굵게 하고 싶었다. 나는 적정한 시기에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게 답했습니다.

역도 영웅
→ 재단 이사장, 대학교수

대한민국 前 여자 역도 선수 장미란은 대한민국 역도계에서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운 선수입니다. 그녀는 아버지, 여동생, 남동생 모두 역도 선수인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도를 시작했는데요. 그러한 뚝심과 노력으로 장미란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총 326kg을 들어 올려 세계 신기록을 이뤄냈었습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역도 정상을 지키던 그녀도 잦은 부상에 교통사고까지 당하며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장미란은 은퇴를 염두에 두고 공부와 운동을 꾸준히 병행했었습니다. 2012년엔 이미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2013년 은퇴 후 용인대 체육과 박사 과정을 등록했는데요. 이후 그녀는 스포츠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6년엔 용인대 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서 후배들을 이끌었습니다.

장미란은 ‘장미란재단’까지 설립하여 비인기 종목 선수들과 유소년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자 코리아와 함께하는 봉사활동’, ‘찾아가는 스포츠 멘토링 교실’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연탄을 배달하거나 사랑의 급식을 제공하고 있죠. 현재 그녀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한 대학에서 스포츠 행정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