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봉이냐’ 명동 한복판에서 1인시위하던 남학생의 현재

 

드라마를 보다 보면 톱스타가 아님에도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만나볼 배우 역시 풋풋한 소년의 이미지로 ‘국민 오빠’에 등극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는데요. 이 배우는 이제 소년이 아닌 건장한 남성이 되어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습니다. 남다른 과거로도 주목을 받고,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늘 범상치 않았던 이 배우는 누구일까요?

쇼트트랙
대전광역시 대표 선수

송중기는 연기·외모·스타성·대중성 모두 출중하다고 평가받는 배우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흥행배우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기 전 송중기는 쇼트트랙 선수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충남 대덕군 세천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쇼트트랙 선수 활동을 했으며 대전광역시 대표 선수로도 활약하던 쇼트트랙 인재였습니다. 전국체육대회에도 3차례 출전했었죠.

하지만 부상과 파벌, ‘쇼트트랙으로 먹고살기 힘들겠다’와 같은 고민으로 송중기는 쇼트트랙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그는 동계올림픽 출전을 꿈 꿀 정도로 인생의 전부였던 쇼트트랙을 그만두고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요. 이내 송중기는 쇼트트랙을 포기한 만큼 공부에 전념하자는 생각으로 온전히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학업에 집중하면서 고3 때 내신 성적 ‘올 수(秀)’를 받고, 전교 부회장까지 맡으며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했죠.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던 송중기는 연예인을 꿈꿨고, 연극 영화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가 막강했습니다. 결국 송중기는 부모님의 권유로 재수를 하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진학 준비를 했죠. 강북 종로학원에서 재수 준비 중에도 그의 외모는 빛을 발했습니다. 학원에서 ‘송중기’하면 모두가 알 정도의 인기를 자랑했죠. 여학생들이 송중기를 구경하려고 뒷문에 몰려있거나, “송중기 생각하느라 공부 못 해서 수능 망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는 학원의 유명 인사였습니다.

수능 400점 만점에
380점 맞은 ‘성대 얼짱’

송중기는 수능 400점 만점에 무려 380점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 합격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2학년 때 경영학을 전공하게 됐죠. 명석한 두뇌와 빛나는 비주얼을 고루 갖췄던 송중기는 ‘성대 얼짱’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균관대 표지 모델 장식은 물론 교내 방송국 활동까지 하게 됐고, 서울 지역 대학 방송국 협의회의 부의장을 맡으며 기자단 활동으로 데뷔 전부터 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성대 얼짱 유명세로 송중기는 일반인 얼짱들을 대상으로 했던 꽃미남 아롱사태에도 출연하게 됐는데요. 그의 일반인 시절 방송 출연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대 2학년 재학 시절엔 <퀴즈 대한민국>에도 출연했었죠. 재밌는 사실은 기존 출연자가 사정이 생겨서 출연할 수 없게 되자 해당 프로그램 FD가 아는 동생 사이였던 송중기를 대타로 출연시킨 것인데요. 대타로 출연했음에도 송중기는 해당 프로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날 방송이 나간 후 연예인이 아님에도 송중기는 팬카페까지 생기게 됐죠.

1인 시위 광고부터
조연까지

막상 재수까지 해서 대학에 와보니 송중기는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군대를 갈지, 취직해서 돈을 벌지,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같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죠. 결국 그는 ‘돈을 못 벌고 살더라도 진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송중기는 그동안 관심 있었던 아나운서와 방송 PD 준비를 하게 되는데요. 할수록 본인 적성에 맞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배우에게 막연하게 가졌던 환상과 동경을 바탕으로 연기를 하고자 연기학원에 등록하게 됩니다.

송중기는 무명시절 취업포털 사이트 이벤트 티저광고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남자가 봉이냐? 여자가 집, 차 사라’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것처럼 광고를 진행했죠. 송중기는 이런 파격적인 광고 외에도 영화 <쌍화점>에서 조인성의 호위무사,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에서 기자 역 등으로 열연하며 자신을 알렸습니다. 이러한 무명시절 끝에 지금의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싸이더스HQ에 들어가게 됐죠.

미소년과 상남자 사이
넘나드는 비주얼

송중기는 초기작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트리플> 등에서 주로 귀엽고 유쾌한 소년 이미지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인기 있는 미남의 트렌드가 부담스럽지 않은 훈남, 꽃미남 등으로 바뀌면서 송중기는 인기를 얻기 시작했죠.

대중들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로 각인되던 송중기는 드라마 <착한 남자>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간의 연기와는 다른 서늘하고 차가운 눈빛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인데요. 그는 드라마 속 눈빛이 서늘해 보인다는 반응에 “내게 그런 성격이 있기 때문에 그런 눈빛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변신으로 그는 처연하고 아련한 분위기, 양면성을 지닌 배우라는 평가도 받게 됐죠.

드라마 섭외 작가가
군대까지 찾아가

2013년, 송중기는 연기를 잠시 중단하고 육군으로 입대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 송중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모두의 기대와 관심을 받은 만큼 송중기는 군 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연예인 티를 내지 않고 비무장지대에서 고난도의 위험한 훈련을 전부 소화해냈죠. 많은 사람들이 송중기의 제대를 기다리는 만큼 김은숙 작가 역시 송중기의 제대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차기작에 송중기를 섭외하기 위해 그의 제대 날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죠.

김은숙의 성공적인 섭외로 송중기는 전역 후에도 공백 없이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 유시진 역할로 초대박을 터트렸죠. 초반에는 송중기의 소년 이미지가 군인 역할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군대 생활과 꾸준한 운동을 통해 얼굴선이 굵어진 그는 강한 남자의 매력을 어필해냈고 신드롬을 일으켰죠. 이로써 그는 매 작품마다 항상 최상의 비주얼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2번의 열애설과 결혼
2년만에 이혼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에게 성공뿐만 아니라 사랑도 가져다줬습니다. 그는 태양의 후예 상대역이었던 송혜교와 2차례 열애설 끝에 결혼에 골인했죠. 국내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톱스타들의 결혼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끼쳤지만 둘은 2년도 채 되지 않아 파경을 맞이했는데요. 성격 차이로 인해 송중기와 송혜교는 합의 이혼을 하게 됐다며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승리호와 빈센조
열일 행보 중

아픔도 잠시, 송중기는 개인사를 딛고 연기 활동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에서 태호 역할을 맡으며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줬고, 승리호는 큰 흥행을 거두었죠. 승리호 속 태호 캐릭터를 어떻게 봤냐는 질문에 그는 “태호는 이혼 후 자포자기 상태의 저와 같았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송중기는 승리호에 이어 <빈센조>로 브라운관에도 복귀했습니다. 마피아의 냉철한 전략가이자 변호사 ‘콘실리에리 빈센조 까사노’ 역할로 분해 능청과 진지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연기 변신이 호평을 받았죠. 송중기는 “내 안에도 여러 가지 면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억지로 하는 성격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는 악함, 독함, 날카로움을 ‘빈센조’에 투영해서 표현했다”라고 설명하며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캐릭터 변신과 활동을 이어나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